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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시아의 역사-아시리아와 페르시아

서아시아의 역사

by eternalvalue 2025. 1. 29.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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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시아의 역사 중 아시리아와 페르시아

 

서아시아의 역사를 통어 오늘은 서아시아지역의 문명들과 이를 아우르는 아시리아와 페르시아에 대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서아시아 지역은 동쪽으로는 아프리카와 서쪽으로는 아시아를 가르는 시나이 반도와 튀르키예의 보스포루스 해협으로부터 출발하여 파키스탄을 포함하는 인도 문화권까지의 위치를 말합니다. 북쪽으로는 중앙아시아 천연 경계 지역인 캅카스산맥으로부터 남쪽으로는 아라비아반도까지입니다. 이 서아시아 지역 중 특별히 처음으로 나타난 강력한 국가이자 문명이 있었습니다. 그 문명은 히타이트 문명이라고 합니다. 이 문명은 과거부터 아주 강력한 철기문화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이 철기 문화로 서아시아 일대를 전부 장악했던 국가이자 문명이며, 전차를 사용한 문화가 바로 이 서아시아의 히타이트 문명입니다. 

 

 

서아시아의 세계사-아시리아와 페르시아
서아시아의 역사에서 아시리아와 페르시아

 

 

서아시아의 역사 중 페니키아와 아시리아

 

그 이후에 나타난 것이 페니키아 입니다. 이 페니키아는 식민도시들을 많이 만든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식민도시는 카르타고라는 도시로 현재의 튀니지 지역과 일치합니다. 이다음에 등장하게 되는 도시가 바로 헤브라인이 만든 이스라엘입니다. 이 이스라엘은 독특한 사상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유일신 사상입니다. 이 유일신 사상이 이후 기독교나 이슬람교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이 세 국가는 약간씩 비슷하나 시기 순서로 나열하였습니다. 이때 이 국가가 여러 갈래로 나어지고 어지러운 상황이 벌어지게 되나 이 혼란한 시기를 한번에 정리한 국가가 있습니다. 이 7세기에 나타난 이들의 이름이 바로 아시리아 입니다. 혹자는 이 아시리아가 서아시아 지역을 통일한 최초의 국가라고도 합니다. 이 아시리아는 서아시아 지역을 통일하며 자신들의 영향력을 점차 확장 나갔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기마술이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아시리아 국가는 강력한 힘 만큼이나 강력한 통치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말로 가혹한 통치라고도 하는데, 이는 피정복 국가에 대해 매우 폭압적으로 정치를 해나갔기 때문입니다. 초기에는 아시리아의 가혹한 통치가 통했으나 시간이 지나며 오히려 반발심과 저항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에는 이 일로 인해 4개의 국가로 분열하게 되었습니다. 리디아, 메디아, 그다음 신 바벨로니아와 이집트로 분열이 되었는데 이 상황을 다시 통일한 제국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페르시아 입니다.

 

서아시아의 역사 중 페르시아 제국

 

이 페르시아 제국은 2개로 나누어 볼 수가 있는데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와 사산 왕조 페르시아가 있습니다. 먼저 기원전 6세기에 등장하는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는 아시리아에 이어서 다시 한번 서아시아를 통일한 제국입니다. 이 페르시아 제국은 이전의 아시리아와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자신들이 정복한 피지배국 사람들에 대해 관대한 정책을 가지고 옵니다.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은 종교에 대한 부분입니다. 이 페르시아에서는 조로아스터교를 숭배했는데 다른 말로는 배화교라고도 합니다. 이 조로아스터교는 불을 숭배하는 종교인데 그 이유를 환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지역에 특별히 사막이 많은 지역인데 사막은 낮에는 덥지만 밤에는 너무 추워서 동사하는 일이 종종 일어나고는 합니다. 그래서 밤마다 몸의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불은 매우 필요하며 또한 신성하게 여기게 됩니다. 또한 이 종교의 세계관은 전 세계를 선과 악 대결 구조로 바라보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며 최후 심판에 대한 교리가 있습니다. 이 심판대의 어려움에 빠진 숭배자를 구원할 구원자가 있다는 것이 이 조로아스터교의 주된 교리입니다. 또한 이 페르시아 제국 아케메네스 왕조에서 가장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인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다리우스 1세 입니다. 이 다리우스 1세는 페르시아 제국 아케메네스 왕조에서 전성기를 이끈 황제로 대제국을 건설하며 수도를 아주 아름답게 건설하는 업적을 남깁니다. 이 수도의 이름이 바로 페르세폴리스입니다. 또한 도량형을 실시하고 화폐를 통일시켜 경제를 살리는 일을 합니다. 또한 이 황제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바로 중앙집권 통치입니다. 그러나 중앙집권 통치를 하기에는 페르시아 제국의 땅이 너무 과도하게 넓었습니다. 이 과도하게 넓은 페르시아 제국을 통치하고자 각각의 속국마다 총독을 파견하였고 이 총독을 관리하기 위해 왕의 눈과 귀의 역할을 담당하는 감찰관을 파견하였습니다. 이 감찰관이 각각의 지역으로 속히 파견되고 왕래하기 위해 도로를 건설하는 업적을 이어서 남기게 됩니다. 그 시기에 약 2700km의 도로를 건설하고 중간중간에 100군데가 넘는 역참을 설치합니다. 이전에는 2개월에서 3개월이 걸렸던 거리가 이 도로로 인해 일주일이면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중앙집권적 통치를 이루어갔지만 이 왕조도 결국 쇠퇴하게 됩니다. 그 이유가 바로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입니다.

서아시아의 역사 중 페르시아 전쟁과 그 이후

 

그리스와 페르시아가 싸웠으며 이 것이 바로 페르시아 전쟁입니다. 이때 그리스가 이기고 페르시아가 패하게 되며 페르시아 제국이 쇠퇴하게 되며 최종적으로 알렉산드로스 제국에 의해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이 시기가 기원전 4세기 정도 됩니다. 이때 이 페르시아 제국이 분열이 되며 나어지게 되는데 그리스계열에서 만들어진 나라의 이름이 박트리아이며 이란계열에서 만들어진 나라의 이름이 파르티아 입니다. 그 시기가 기원전 2~3세기경에서 기원 후 3세기 정도까지이며 그다음에 등장하는 게 바로 사산 왕조 페르시아 제국입니다. 이 전의 페르시아를 전기 페르시아라고 하며 이후에 나타난 사산 왕조 페르시아를 후기 페르시아라고 니다. 이 사산왕조는 이전의 박트리아와 파르티아 뿐만 아니라 인도의 쿠션왕조까지 점령을 합니다. 이 넓은 지역을 다스리며 중계무역으로 엄청난 이득을 독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존의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게 됩니다. 종교는 국교가 되면 급속한 세속화가 일어나며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때 이 조로아스터교를 비판하며 등장한 종교가 바로 마니교 입니다. 이 마니교는 여러 개의 종교가 섞이며 나타난 종교로 조로아스터교와 불교가 대표적으로 혼합된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들은 특별히 금욕주의를 요구하며 종파 활동을 하게 되는데 이때 이 사산왕조에서 종교와 관련되어 많은 공예 기술이 발전하게 됩니다. 이들은 7세기경에 이르러 이슬람 세력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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